내부통제, 형식에서 실질로: 책임 중심 경영이 바꾸는 금융사의 풍경
책임 경영이 금융 산업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책무구조도의 도입은 단순한 제도 변화가 아니라, 금융사 전반의 운영 철학을 재편하는 흐름의 일환이다. 이제 내부통제는 더 이상 준법감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CEO를 비롯한 모든 임원이 각자의 역할과 책임에 따라 통제 체계를 설계하고 실행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전까지 금융 사고 발생 시 준법감시인만을 책임 주체로 삼는 관행은 조직의 내부통제를 형식적인 요건으로 전락시키는 원인이 됐다. 하지만 책무구조도는 조직 내 각 임원의 책임을 명확히 문서화함으로써, 실질적인 책임 소재를 묻고 사고를 예방하려는 장치다. 특히 CEO나 이사회 의장도 더 이상 '보고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면책될 수 없다. 내부통제의 실행력이 곧 리더십의 검증 기준이 되는 구조다.
이 같은 변화는 단지 법적 책임의 강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직문화와 경영 방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내부통제는 이제 '준수해야 하는 규칙'이 아닌 '지속 가능한 경영의 기본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성원 간 책임의 연계를 통해 조직 전체의 리스크 인식 수준을 높이고, 대응 체계를 체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공지능(AI)과 데이터 분석 기술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상 징후를 탐지하고, 규정 위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기술은 내부통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핵심 도구다. 특히 반복적인 모니터링 업무에 AI를 도입하면 인적 자원의 한계를 보완하고, 컨트롤 타워가 보다 전략적인 판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내부통제는 시스템과 문화가 맞물려야 실질적으로 작동한다. 기준 마련, 정기 점검, 개선 조치, 교육과 훈련 등 모든 프로세스가 단순히 문서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실행 주체인 임원들이 이를 실제로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감독 당국이 이를 운영 실태 점검의 핵심 요소로 보는 이유다.
이제 금융사는 “책임의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 리더가 단순히 성과 중심의 지표에만 집중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실질적인 내부통제, 조직 내 리스크 감수성 강화, 책임 있는 의사결정 구조 구축이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책무구조도는 그 변화의 신호탄이다. 금융사의 경쟁력은 결국 ‘책임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책임 중심의 경영이야말로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금융 환경에서 조직이 신뢰를 얻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한 핵심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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