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반응생산의 새로운 열쇠, '공유형 소싱' 실험이 시작됐다

 베트남은 이제 단순한 생산기지를 넘어,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패션 시장의 유연한 대응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근 국내외 패션 브랜드들이 주목하는 방식은 ‘반응생산(QR, Quick Response)’이다. 이는 실시간 수요에 맞춰 생산량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공급 과잉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소비자 반응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기준으로는 반응생산의 리드타임이 평균 45일 정도지만, 베트남에서는 현지 조달 환경과 물류 체계 등의 문제로 인해 평균 70~90일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국내 브랜드들은 60일 이내로 리드타임을 압축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생산업체와의 긴밀한 사전 조율, 초기 소량 생산, 빠른 피드백 체계가 필수적인 이유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주목받는 전략은 ‘공유형 소싱’ 모델이다. 이는 하나의 생산업체가 복수의 브랜드 메이커와 협업하여 공용 원사 및 원단을 비축하고, 이 자원을 각 브랜드가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하는 방식이다. 마치 여러 브랜드가 하나의 소싱 풀을 공유하는 형태로, 원자재 확보가 어려운 베트남 현지의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대응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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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B 브랜드는 자사 주력 아이템인 ‘썸머 니트’ 생산을 위해 베트남 현지 파트너와 공유형 원단 비축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일정 물량을 사전에 확보해두고, 시즌 중간에 발생할 수 있는 급작스러운 리오더 수요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은 예측 불가능한 소비자 반응에도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반응생산 전략을 보다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이 모델이 단순히 계약 한 장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유형 소싱을 가능하게 하려면 브랜드와 생산업체 간의 ‘운명 공동체’적 협력이 필수다. 생산업체 입장에서는 한 브랜드의 수요가 지연될 경우 다른 브랜드로 전환해 자원을 소진할 수 있는 '보장'이 필요하고, 브랜드 입장에서도 이를 위한 책임 있는 수요 예측과 운용이 필요하다. 단순히 빠르게 생산해내는 것 이상의, 구조적 신뢰와 시스템이 구축되어야만 가능한 모델이다.

또한, 반응생산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생산만을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예측하는 기술적 기반도 중요해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AI 기반 수요예측 시스템과 ERP를 연동해, 제품별 판매 속도와 지역별 반응을 반영한 추가 생산 시점을 정교하게 조율하고 있다.

베트남이 단순한 ‘저가 생산기지’에서 ‘전략적 생산 허브’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조적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필요가 있다. 빠른 피드백과 효율적인 협업, 유연한 소싱 체계가 갖춰진다면, 베트남은 K패션의 글로벌 확장에 있어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소량 생산 후 시장 반응을 통해 추가 생산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었다. 이제 패션 산업은 ‘누가 더 멋진 옷을 빨리 만들 수 있는가’에서 ‘누가 더 유연하게, 똑똑하게 대응할 수 있는가’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베트남은 그 변화의 중심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