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기업회생, ‘반짝 성장’의 끝자락에서 드러난 산업 구조의 민낯
명품 플랫폼 업계의 대표주자였던 발란이 결국 법원의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고, 인수합병을 통해 재기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2020년대 초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이커머스와 패션 산업의 핵심 트렌드로 부상했던 이들 기업은 불과 몇 년 만에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명품 소비 열풍과 골프웨어 붐에 올라타 단기간 내 시장을 장악했던 플랫폼 기업들이 고금리와 소비위축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며 급속도로 흔들리고 있다.
한때 ‘패션의 넷플릭스’를 꿈꾸며 고객 유치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던 명품 플랫폼들은, 현재 2년 연속 영업손실과 매출 급감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실패라기보다는, 구조적으로 무너진 산업 내 수요 공급의 불균형을 의미한다. 고도성장기에는 수요가 예측을 넘어서며 공격적인 물량 확보와 비용 지출이 정당화됐지만, 팬데믹 종료 이후 소비심리가 급격히 냉각되며 거품이 걷히고 있는 셈이다.
골프웨어 업계 또한 유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신소비 트렌드에 힘입어 2020~2022년까지 급격한 외형 성장을 이뤘던 브랜드들이, 2023년 이후부터는 높은 재고 부담과 채널 과잉 경쟁에 시달리며 고전 중이다. 특정 브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의 수익성 악화와 과잉 공급, 소비 위축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은 패션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한 법인의 수가 전년 동기 대비 26%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건설, 외식, 물류 등 실물경제 전반에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침체가 아닌, 경제 전반의 고비용·고위험 환경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흐름에서 눈여겨볼 점은 ‘외부 변수’의 복합적 작용이다. 과거 기업의 위기는 대부분 내부 요인, 예컨대 부실한 경영이나 마케팅 실패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최근의 위기는 글로벌 경제 둔화, 고금리 기조, 원자재 및 물류비 상승 등 통제 불가능한 외부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환율 불안정성과 고정비 부담 역시 기업들이 쉽게 버티기 힘든 요소로 작용한다.
이처럼 전방위적인 압박 속에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구조조정을 넘어, 소비자와의 관계 재정립, 유통 구조의 효율화, 상품력 중심의 장기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단기 성장에 매몰된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발란의 사례는 많은 기업들에게 중요한 경고 신호가 되고 있다.
향후 시장은 보다 보수적인 재무 전략과 실질적인 소비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뜨는 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리한 확장을 감행했던 기업들은 거품이 꺼지면서 진짜 실력으로 평가받는 국면에 들어섰다. 더 이상은 외형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와 내실 중심의 성장 전략이 시장의 선택을 받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제는 성장보다 회복과 재정비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다. 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 변화의 흐름을 직시하고, 다음 싸이클을 준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화려했던 명품 플랫폼의 시대는 저물었고, 이제 진짜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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