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체제 속의 해커, 신작 ‘리던던시’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심연
인디 공포 게임계에 또 하나의 강렬한 작품이 등장했다. 게임 개발자 제이드 모리슨(Jade Morrison)의 신작 ‘리던던시(Redundancy)’는 사이버 해킹을 소재로 한 디스토피아 호러로, 인간성과 시스템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수작이다.
게임은 거대한 감시체계로 둘러싸인 미래 도시 ‘오르비트 시티’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은 효율성과 생산성만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삶을 평가하는 철저한 알고리즘 사회. 주인공은 시스템에 의해 ‘비효율적’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직장을 잃고, 신용등급이 붕괴된 채 ‘삭제 대상자’로 분류된다. 유일한 생존 방법은 정부의 감시망을 뚫고 시스템의 근간을 해킹하는 것. 게임의 핵심은 이 ‘삭제 회피 작전’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있다.
텍스트 기반 명령어 시스템과 흑백 CRT 모니터 그래픽은 90년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며, 조작의 불친절함조차 의도된 디자인이다. 초반에는 간단한 디렉토리 접근 명령어를 입력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암호 해독과 네트워크 추적, 신호 왜곡 등 고도화된 해킹 기술을 마스터해야 한다. 명령어를 잘못 입력하면 시스템에 위치를 노출시켜 ‘보안 AI’에 추적당하게 되며, 게임 내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리던던시는 단순한 해킹 시뮬레이션을 넘어선다. 시스템 내부에는 다른 삭제자들의 기록이 흩어져 있고, 플레이어는 이를 수집해 점차 이 세계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과거 해커의 흔적을 되살리기도 하며, 어떤 정보는 주인공의 정신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윤리적 선택을 강요받게 되며, 결과는 다회차 플레이에서 전혀 다른 결말을 만들어낸다.
개발자 제이드는 “리던던시는 ‘기억되지 못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며,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난 개인이 어떻게 존재의 의미를 되찾는가를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게임 내내 들려오는 AI의 냉담한 음성과 ‘기계식 윤리판단’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불쾌함과 공포를 안긴다. 이 공포는 점프 스케어나 고어보다 훨씬 심층적인 방식으로 작용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비선형적 구조’다. 같은 파일이라도 접근 순서나 해석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하며, 어떤 플레이어는 숨겨진 루트로 ‘리던던시’ 프로젝트의 기원을 파헤치기도 한다. 마치 스스로 로그를 분석하고, 진실을 직조해 나가는 데이터 탐색자(data scavenger)가 된 듯한 체험을 제공한다.
리던던시는 출시 이후 단 3일 만에 스팀에서 ‘매우 긍정적’ 평가를 유지하고 있으며, 트위터와 디스코드 등 커뮤니티에서는 벌써부터 다양한 루트 해석과 숨겨진 ending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게임 특성상 정식 한글화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나, 개발자 측은 “다국어 지원에 매우 열려 있다”고 밝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마이크 클루브니카가 벅샷 룰렛과 스플릿으로 촘촘한 공포 서사를 그려냈다면, 제이드 모리슨의 리던던시는 더 미세하고 깊은 공포의 결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디스토피아 세계 속에서 인간 존재의 자리를 되묻는 이 작품은, 기술과 윤리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과연 우리는 시스템 속에서 ‘필요한 존재’일까, 아니면 언제든 교체 가능한 ‘리던던시’일 뿐일까? 게임을 종료한 뒤에도 이 질문은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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