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하루, 나의 하루—미술치료로 이어진 조용한 회복의 시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어른이 되었을까.”
엄마의 병실에서 아침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얀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출근하는 사람처럼 인사를 건넵니다. “엄마, 오늘도 밥 잘 챙겨 먹고 계셔야 해요.” 그러면 엄마는 조용히 웃습니다. 말수가 줄어든 그 미소 하나에도 위로를 받습니다.
누군가를 간병한다는 일은 무게가 남다릅니다. 특히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매일 병실에서 밤을 보내고, 간병일지를 쓰며, 엄마의 몸 상태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어느새 나는 ‘딸’이 아니라 ‘보호자’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감정은 눌러두고, 피곤은 참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며칠, 몇 달이 흐르다 보면 마음도, 몸도 점점 무뎌집니다.
그런 제게 처음 미술치료가 제안되었을 때는 사실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림 그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정작 붓을 잡고, 색을 고르고, 나도 모르게 손끝에 실려 나온 내 감정을 마주했을 때, 저는 그동안 제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처음으로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을 색으로 표현하면서, 말로는 꺼내지 못한 속내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준 느낌이었습니다.
치료라기보다는 잠시 짐을 내려놓는 쉼 같았습니다. 꼭 멋진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괜찮았고, 완성되지 않아도 상관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불완전함’ 속에서 제 진짜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었지요. 마치 잘 정리된 방 안에서, 마음의 공기까지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엄마는 여전히 병상에 계십니다.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그 사실에만 묶여 있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손을 잡아주는 것, 창밖 햇살이 예뻤다고 이야기 나누는 것, 그런 작지만 따뜻한 순간들이 제게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미술치료를 통해 제가 회복하고 있는 이 작은 생기들이, 다시 엄마에게도 전해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계신 분들께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도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요.” 미술치료는 하루의 무게를 줄여주진 않지만, 그 무게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때로는 감정을 다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 나를 위한 작은 숨통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도 병원 복도 한편에서 조용히 마음을 그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그림 속에는 지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담겨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언젠가 나를, 우리를 회복으로 이끌어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림 한 장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하루에, 따뜻한 위로가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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