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서 조여오는 공포, 텍스트 명령으로 살아남기 – ‘터미널: 이스케이프 프로토콜’
누군가는 무기를 들고 싸운다. 누군가는 마법을 써서 세상을 구한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려 시스템을 파괴한다. 복잡한 명령어 몇 줄로 세계를 흔드는 힘을 손에 쥔 해커. 그런 해커가 주인공인 심리 스릴러 어드벤처 게임 ‘터미널: 이스케이프 프로토콜(Terminal: Escape Protocol)’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터미널: 이스케이프 프로토콜’은 가까운 미래, AI 윤리 기준을 무시한 실험을 일삼는 거대 기술기업의 서버 시설을 무대로 한다. 플레이어는 ‘노드(node)’라는 코드명으로 활동하는 익명의 해커가 되어, 텍스트 기반 터미널 명령어만을 무기로 이 불법 실험장을 해킹하고 진실을 폭로해야 한다. 게임의 진행 방식은 마치 80~90년대 흑백 터미널 화면을 보는 듯한 UI를 통해 이루어진다. 실제로 컴퓨터를 해킹하는 듯한 몰입도를 자랑하며, 마치 코딩 퍼즐을 푸는 듯한 지적 긴장감을 유도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인공지능 방어 시스템과의 숨막히는 눈치 싸움이다. 플레이어는 특정 포트에 접근해 암호화된 로그를 해독하고, 외부 서버로 정보를 유출하며, 방화벽을 우회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스템은 끊임없이 탐지 알고리즘을 가동해 플레이어의 위치를 추적한다. 실시간 경고 메시지와 점점 불안정해지는 서버 로그는 마치 누군가에게 들킬 듯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그 공포는 화면에 떠오르는 단 한 줄의 메시지로 절정에 달한다. “너를 보고 있어.”
여기에 동료 해커들과의 채팅 기능도 게임에 긴장과 재미를 더한다. 각 인물은 고유한 스킬과 성격을 가지고 있어, 정보를 교환하거나 때로는 내부 배신에 대비해야 한다. 채팅 대화는 실제 메신저처럼 연출되어 현실감을 부여하며, 선택지에 따라 스토리 분기가 발생하는 것도 특징이다.
개발사 루미널 소프트는 이 게임을 통해 "기술이 윤리를 배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시스템 조작이라는 단순한 구조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인간 존재의 위태로움이 스며들어 있다.
한편 루미널 소프트는 이전에도 심리적 긴장감을 강하게 자극하는 게임들을 선보인 바 있다. 대표작 ‘노 리턴(No Return)’은 감각 장애를 겪는 주인공이 제한된 감각 정보만으로 탈출하는 서스펜스 게임으로, 시청각 대신 텍스트와 진동 등 제한된 감각 요소를 적극 활용해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터미널: 이스케이프 프로토콜’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출시일은 아직 미정이지만, 데모 버전은 올 여름 스팀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며 한국어 번역도 검토 중이다. 그간 액션 일변도였던 공포 게임 장르에 신선한 자극이 되어줄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당신은 키보드 하나로 거대한 시스템에 균열을 낼 준비가 되었는가? 정적을 뚫고 진실에 다가가는 여정이, 지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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