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눈으로 본 세상, 그리고 전장의 끝에서
33세의 체스터는 그 누구보다도 이성적이었다. 전직 과학 교사였고, 수많은 논문을 읽으며 ‘죽음의 메커니즘’을 철저히 분석해왔던 남자. 그가 원정대에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페인트리스가 새긴 ‘33’이라는 숫자에서 자신을 지우기 위함. 하지만 그는 전면전을 선택하지 않았다. 직접 검을 들고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닌, 세상의 법칙을 굽히는 방식으로 페인트리스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런 체스터가 고른 동료는 의외였다. 연인인 마리안. 29세의 도시설계사였던 그녀는 재해지역 복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중 체스터를 만났고, 둘은 몇 번의 논쟁 끝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페인트리스의 저주가 시작된 날, 마리안은 체스터에게 말했다. “너를 살릴 수 있다면, 내가 대신 죽는 한이 있어도 좋아.” 체스터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말릴 수 없었다. 왜냐면, 그녀의 눈으로 본 세상이 그에겐 전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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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은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공간 감각이 뛰어난 초지각자였다. 건축 설계 시 현실의 공간을 초월해 ‘미래에 생길 균열’을 예측할 수 있었고, 이 능력은 전장의 예측에도 응용할 수 있었다. 적이 숨어 있는 지점을 미세한 소리나 그림자 변화만으로 파악하고, 구조물의 흔들림만으로 함정의 위치를 계산해냈다.
그러나 이 커플의 진짜 위력은 ‘공유 감각’에 있었다. 체스터는 자신이 개발한 기계 장치를 통해 마리안의 시각과 청각을 일정 시간 동안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시야가 좁고 손이 떨리는 체스터 대신, 마리안의 ‘눈’과 ‘귀’를 빌려 전장을 지휘하는 것이다. 이들은 언제나 함께 움직였고, 마치 하나의 몸처럼 전투와 회피를 반복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장비의 과부하. 장시간 공유 상태가 지속되면, 체스터의 뇌는 마리안의 감각에 동화되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실제로 3회 이상 과부하 상태에 들어간 후 체스터는 식사 때도 자신의 손이 아닌 마리안의 팔을 찾아 허공을 더듬는 증세를 보였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사랑이 만든 비극적 기술"이라 말했고, 누군가는 "극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최적의 팀워크"라 칭송했다.
원정대는 이들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전장의 위협 속에서 한 사람을 위해 둘이 움직인다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통과한 구간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마리안은 언제나 구조적 약점을 먼저 발견했고, 체스터는 그 정보를 기반으로 적절한 진입 경로를 지시했다. 그야말로 ‘연인의 눈으로 본 세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페인트리스의 수하인 ‘백안의 사자’가 나타났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눈을 지녔다는 괴물이었다. 체스터와 마리안은 이 괴물을 상대로 둘 중 한 사람만 감각을 유지하기로 했다. 선택은 마리안이었다. 그녀가 직접 시선을 돌릴 수 있다면, 체스터의 기계는 필요 없었다. 대신, 그녀의 감각이 끊기면 체스터는 완전히 무력해질 터였다.
싸움은 길고도 처절했다. 마리안은 사자의 눈을 피해 이동하며 유인했고, 체스터는 그녀의 위치에 맞춰 주변 구조물의 붕괴를 유도해 함정을 만들었다. 최후에는, 마리안의 눈이 완전히 타버린 뒤 체스터가 마지막 힘으로 폭발 장치를 작동시켜 적을 무너뜨렸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체스터의 눈물과 숨결로 그를 느꼈다.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봐줄 테니까.”
이후 이 커플의 전설은 원정대의 신화로 남았다. 이들은 물리적 전투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지만, 감각과 신뢰만으로도 어떤 적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그들의 방식은 낡았지만, 동시에 가장 진보적이었다. 사랑이란, 결국 서로의 결점을 ‘보완’하는 감각의 연합체라는 진실을, 누구보다 먼저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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