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어루만지는 시간: 트라우마 회복을 향한 첫걸음

 “머릿속이 새하얘졌어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  

작은 목소리로 떨리는 말을 이어가던 남성. 맞은편에 앉은 상담사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몸의 감각을 느껴볼까요?”  

남성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손끝이 저릿해요.”


서울 도심 한복판.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상담실에서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다. 충격적 사건을 겪은 이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기 위한 치열한 작업이다.

트라우마, 조용히 스며드는 고통


트라우마는 ‘극심한 심리적 충격’이라는 단어로 단순히 설명할 수 없다.  

교통사고, 재난, 범죄 피해, 심지어 어린 시절의 방치까지, 수많은 사건들이 사람들의 내면에 깊은 흉터를 남긴다.  

문제는 이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피해자는 일상 속에서 원인 모를 공포, 불면, 분노, 무기력에 시달린다.  

“별일 아니었잖아”라는 무심한 말 한마디가 오히려 고통을 덧입히기도 한다.

치유의 시작, 기억을 직면하는 용기

다음 틱톡에 대한 정보는 이곳에서 확인해 보세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우선 ‘기억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피해자가 다시 그때 그 장면을 떠올리고, 느끼고, 말로 표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끈질기게 피하고 싶은 기억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이 과정을 통해 마음은 조금씩 치유의 길로 나아간다.


치료자들은 ‘안전한 공간’ 안에서 이 과정을 함께 동행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가 회복의 가장 첫걸음이다.

치료자의 진짜 역할: '고쳐주는 것'이 아닌 '곁에 머물기'


트라우마 치료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가 자기 속도에 맞춰 상처를 꺼내고, 다시 다루도록 ‘공간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치료자는 조심스러운 질문과 반응을 통해 피해자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도록 돕는다.  

때로는 긴 침묵도 필요하다.  

때로는 단순한 고개 끄덕임이, 복잡한 위로의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여전히 열악한 현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트라우마 치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정신건강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장시간 상담을 요하는 고난도 치료는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특히 재난 현장이나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소진(burn out)’을 호소하는 전문가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누군가는 ‘그날 이후’ 무너진 삶의 조각을 다시 주워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괜찮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


트라우마는 특정한 소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기치 않은 사고, 재난, 개인적 상처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래서 사회 전체가 트라우마 회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벼운 농담 대신 조심스러운 질문을, 무심한 위로 대신 진심 어린 기다림을 선택해야 한다.


상처 입은 마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때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