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로 잠그는 순간, 새로운 문을 여는 의식 – 콘클라베의 모든 것
“하늘에 흰 연기가 오르면, 세상은 새로운 교황을 맞이한다.”
이 장면은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한 가지 전통을 상징한다. 바로 ‘콘클라베(Conclave)’다. 라틴어로 ‘열쇠와 함께(con clavis)’를 뜻하는 이 단어는, 단순한 회의 그 이상을 의미한다. 교황 선출이라는 신성한 결정을 위해, 추기경들이 스스로를 세속과 단절시키는 장엄한 의식이다.
콘클라베는 교황이 서거하거나 사임한 후 15일 이내에 개최된다. 전 세계에서 모인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들만이 투표권을 갖는다. 이들은 바티칸 시국의 시스티나 경당에 모여,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채 새 교황을 뽑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없다. 오로지 기도, 토론, 그리고 양심에 따른 투표만이 존재한다.
특별한 후보 명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선거권자들은 동시에 피선거권자이기도 하다. 언론이 ‘유력 후보’로 거론하는 이름들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외부의 추측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투표장에 들어선 각 추기경의 마음속에 품은 생각만이 결과를 이끈다.
첫 투표는 첫날 오후에 진행된다. 이후 매일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씩 투표가 이어진다. 세 번의 투표 후에도 당선자가 없을 경우 하루 동안 휴식하며 성찰과 비공식 토론을 갖는다. 이후 다시 투표를 반복한다. 교황이 선출되기 위해서는 출석한 추기경들의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한다. 쉽게 끝나는 일은 아니다.
선출되지 않은 투표는 검은 연기로 세상에 알려진다. 투표용지를 태울 때 특별한 화학 물질을 넣어 검은 연기 또는 흰 연기를 만들어내는데, 흰 연기가 솟구치는 순간은 전 세계 신자들에게 감격의 순간이 된다. 굴뚝을 지켜보던 이들은 탄성을 지르고, 종소리는 바티칸 전역에 울려 퍼진다.
선출된 교황은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즉석에서 정한다. 이는 새 시대의 방향성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후 그는 경당에서 교황 복장을 갖추고,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첫 축복,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도시와 세계에)’를 선포한다.
콘클라베는 정치적 계산과 인간적인 갈등도 교차하는 자리다. 개인적 야망, 교회 개혁에 대한 열망, 대륙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인물이 교황직에 오르기도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오랜 교착 상태 끝에 전혀 주목받지 않았던 인물이 교황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과거 콘클라베 중에는 긴장과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경우도 많았다. 1922년, 무려 14차례의 투표 끝에야 아킬레 라티(비오 11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1939년 에우제니오 파첼리(비오 12세)는 단 3번의 투표로 비교적 빠르게 교황직에 올랐다. 이처럼 콘클라베의 길이는 때에 따라 달라지지만, 모든 과정을 통틀어 흐르는 것은 하나, ‘성령의 인도’에 의존한다는 믿음이다.
최근 영화와 소설을 통해 콘클라베가 조명되면서, 신자뿐만 아니라 대중 모두가 이 신비로운 의식에 매료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묘사 뒤에는 묵직한 책임과 기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콘클라베는 단순한 선거가 아니다. 교회의 미래를 열어갈 문을 여는 열쇠를 돌리는 순간이다. 그 순간, 누군가는 무거운 열쇠를 쥐고, 세상 전체의 기대와 기도를 등에 업는다. 이 얼마나 경이롭고도 두려운 임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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