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간 회생신청”…지방 기업들의 눈물겨운 ‘생존 전략’
전국 곳곳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중소기업들이 서울로 몰리고 있다. 영업 확장 때문이 아니다. 파산 직전의 기업들이 마지막 희망을 붙잡기 위해, 법정 관리 속도와 전문성을 갖춘 서울회생법원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것이다.
전남에서 산업용 포장 공장을 운영하던 C사는 최근 서울 송파구의 한 오피스텔에 영업소를 등록했다. 외부에는 “수도권 거래처 대응을 위해 사무실을 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신청을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C사는 지역 거래처 부도 여파로 수백억 원대 매출 공백이 생기며 자금 압박에 시달렸고, 하루라도 빨리 회생 절차를 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방 지방법원보다 서울회생법원의 처리 속도가 2~3배 빠르다는 점은 이미 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회생 신청을 빨리 하지 못하면 회사 자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등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방 기업들은 “숨이 끊어지기 전에 산소 마스크라도 씌워 달라”는 심정으로 서울행을 택한다.
실제 통계를 봐도 이 같은 현상은 뚜렷하다. 2023년 법인 회생 사건 중 서울회생법원이 맡은 비율은 31%, 2024년엔 32.7%, 올해 1분기에는 33.6%로 매년 증가세다. 3곳 중 1곳이 서울 법원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충북의 한 목재기업은 청주가 아닌 서울 동대문구에 사무실을 내고 회생 절차를 밟았다. “지방 법원은 심사 기준이 애매하고, 필요한 서류도 재판부마다 다르다”는 게 기업 측 설명이다.
서울회생법원은 서류 양식, 처리 프로세스, 심사 기준까지 모두 체계화되어 있다. 변호사 업계에선 “서울은 회생 업무에 특화된 법관과 실무진이 많다 보니, 일처리 속도와 예측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특히 회생 절차 개시 전, 채권자들의 강제집행을 일시적으로 중지시켜주는 ‘포괄적 금지 명령’도 서울은 1~2일이면 끝나는 반면, 지방은 일주일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많아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서울 쏠림 현상’은 지방 기업들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된다. 지방 본사와 별도로 서울에 사무실을 꾸리는 데만 수백만 원이 들고, 회생 절차에 필요한 변호사 수임료나 숙박비, 교통비 등도 만만치 않다. 법정 밖에서도 생존을 위한 비용이 덧붙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서울과 비서울 간 회생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서울, 수원, 부산에만 있는 회생법원을 대구, 대전, 광주 등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각 지방법원에도 회생 업무에 특화된 매뉴얼과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YK의 조은결 변호사는 “지방 중소기업들은 구조적으로 외부 충격에 취약한데, 지역 기반 회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지역 경제 자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 회생법원행’은 기업 입장에서 최후의 수단이자 희망이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 되어서야 곤란하다. 회생의 문턱은 지방 어디에서든 동등해야 한다. 회생은 기업의 삶을 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구하는 데 걸리는 ‘하루’가, 때로는 전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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